| 저자 | 야마자키 아츠코 | 역자/편자 | 천성림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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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10-20 | ||
| ISBN | 979-11-7549-091-8 (93820) | ||
| 쪽수 | 331 | ||
| 판형 | 140*210 무선 | ||
| 가격 | 24,000원 | ||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거스른 여자, 추근
중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여성혁명가 추근(秋瑾)은 흔히 ‘중국의 잔다르크’, ‘건괵영웅’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호칭만으로는 추근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 전족을 했고, 집안이 정한 상대와 결혼했으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당시 여성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접한 뒤 추근은 그 질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장을 하고 거리를 나섰으며, 가족을 뒤로한 채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구속해온 전족도 풀었다. 그의 혁명은 왕조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한 여성에게 ‘당연한 삶’으로 주어진 것들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백여 년 전 추근이 여성해방의 핵심으로 꼽은 것은 경제적 자립이었다. 부모와 남편에게 생활을 의존하는 한 여성에게 실질적인 자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성들에게 공부하라고, 기술을 익히라고, 직업을 가지라고 거듭 호소했다. 교육 역시 교양 있는 아내나 현명한 어머니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삶을 선택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전족과 중매혼, 축첩과 일방적인 여성의 정절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추근이 꿈꾼 여성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여성의 독립’을 권리의 선언에서 생활의 문제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뜻밖의 생생함을 지닌다.
추근으로 보는 여성 연대와 페미니즘
추근이 창간한 『중국여보』 표지에 등장한 여성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지만 전족을 하지 않았으며, 화려한 장신구 대신 죽창을 들고 있다. 그 지면에서 여성의 교육과 직업, 경제적 자립과 연대를 이야기했다. 여성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여야 할 주체로 호명한 것이다.
추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명의 영웅보다 여러 여성의 관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출신도 달랐고 정치적 입장도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우고 일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의 삶을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연결되어 있었다. 추근의 급진적인 선택 뒤에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끝내 기억해준 여성들의 관계망이 있었다.
2026년, 다시 보는 추근
1907년 참수된 추근은 신해혁명 이후 혁명의 열사로 추앙받았고, 항일전쟁기에는 화목란과 함께 애국적 여영웅, ‘중국의 잔다르크’로 다시 불렸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1912년 『매일신보』는 사흘에 걸쳐 추근의 생애를 소개하며 그를 청국혁명의 여자호걸이자 남녀동등권을 위해 싸운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혁명열사’나 ‘여영웅’이라는 이름이 커질수록 그가 생전에 가장 자주 불렀던 대상, 바로 ‘2억의 자매들’은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이 책은 영웅의 동상을 다시 세우기보다 그 동상 뒤에 가려진 여성해방론자 추근의 얼굴을 되찾는데 의의가 있다.
프롤로그
제1장 1875년~
봉추(鳳雛)
단향(栴檀) - 눈부시게 푸른 나날들
결혼(結婚)
제2장 1898년~
망강(望江)
상흔(傷痕)
웅렬(雄烈) - 뜨거운 남자
추상(秋霜)
제3장 1904년~
전기(轉機)
비약(飛躍) - 여영웅의 비상
여립(旅立) - 일본으로
조우(遭遇)
제4장 1905년~
화복(禍福)
자복(雌伏) - 때를 기다리는 여영웅
동맹(同盟)
상서(傷逝) - 슬픈 이별
제5장 1906~1907년
탁류(濁流)
군상(群像)
우수(憂愁) - 깊은 슬픔
붕괴(崩壞)
종언(終焉)
에필로그
후기
역자 후기
해제 - 추진(秋瑾), 여성의 자립과 해방을 추구하다
참고문헌
시장 입구 처형장 뒤에는 명왕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목을 매 자살했던 경산景山이 있다. 영화를 자랑했던 명조도 이자성李自成 등 농민이 일으킨 반란으로 17대로 끝났다. 시선을 돌리니 붉은색을 칠한 높은 벽이 끝없이 이어지며 자금성의 유리기와를 감추고 있었다. 처형되는 유신지사들을 저 높은 건물에 서서 바라보았겠지? 권력자의 번영과 몰락 현장에 서니 추근은 담사동과 상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83쪽)
“나는 남자의 명령을 따르기 싫어요.” “곤란한 사람이군. 요코하마에서는 일본의 관헌과 중국의 정탐들이 유학생 중 위험분자에게 눈을 번득이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 것 같군요.” 사람을 깔보는 듯한 왕단지의 말투에 추근은 화가 났다. 시간이 조금 흐른 일요일, 진숙은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요리를 먹는다는 명목으로 사감에게 신청서를 내고 외출 허가를 받았다. 공애회의 10명이 비밀리에 삼합회에 입회하기 위해서다. 학교 측이 알게 되면 즉시 퇴학 처분인데 그녀들은 추근이 제안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찬성했던 것이다. 멤버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은 조직에서는 그날로 그녀들의 입회 의식을 집행했다. (164쪽)
이성과 추근은 폭약 제조기술도 가르쳐야 해서 테러도 불사하는 과격한 행동가를 그들의 아지트로 데려왔다. “폭탄제조에 숙달해 있는 이성 동지가 지도할 테니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실행일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폭탄을 쟁여둡시다. 이곳은 작은 출판사라서 관헌에게 의심받을 염려는 없을 겁니다.” 광복회의 목표는 청조 요인을 한 사람씩 반드시 죽이는 것이었다. 성질 급하고 겁 없는 추근은 요코하마 이후로 수하인 이성과 함께 『중국여보』 편집과 함께 폭탄제조에 혼신을 쏟았다. (234쪽)
추근의 성격은 열정적이었고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행동주의자였다. 청말에 유행한, 그리고 테러리즘에 영향을 주었던 양명학의 지행합일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추근도 가입한 절강 출신 중심의 혁명단체 광복회는 역시 절강 출신이었던 왕양명의 지행합일설과 러시아의 허무주의에 영향을 받아 혁명의 수단으로 암살을 매우 중시했다. 추근은 여러 방면에 재능이 많았지만 특히 무술과 칼춤, 연설 그리고 문학 방면에 뛰어났다. 240여 수의 시사詩詞를 남겼는데 그밖에도 탄사소설와 논문, 창가唱歌, 서신, 팸플릿 등 40여 편의 다양한 문장이 있다. 아직까지 여성교육이 제도화되지 않았고 또 여성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위험한 일로 치부되던 시대에, 그것도 32년도 안 되는 짧은 생애였음을 감안할 때 놀라운 성과이다. (역자 해제 중에서)
저자
야마자키 아츠코 山崎厚子, Atsuko Yamazaki
1936년 도쿄 출생. 메이지(明治)대학교 문학부 역사지리학과 졸업. 소설가.
중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연속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北京戀』(2002, 제1회 일본문예가클럽 대상 수상)이 있다.
역자
천성림 千聖林, Chun, Sunglim
1960년생.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박사(중국근대사, 1995) 취득 후 이화여대, 카이스트, 공주대 등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였다. 2025년 10월, 카이스트 연구 부교수로 정년퇴임 후 현재는 자유롭게 저술활동 중이다.
대표 저서로 『근대중국 사상세계의 한 흐름』(2003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근대중국, 그 사랑과 욕망의 사회사』(2016), 『중국근현대여성사』(2016), 공저로 『공자, 현대중국을 가로지르다』(2006), 『근현대 중국의 지식인들』(2023), 『여성사, 한 걸음 더』(2024) 등이 있다. 역서로는 마루야마 마츠유키, 『중국근대의 혁명사상』(1988), 우위안(武原), 『중국근대사』(1990), 가와시마 신, 『중국근현대사-근대중국의 모색』(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