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서동주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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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5-04-15 | ||
ISBN | 979-11-5905-484-6 (93910) | ||
쪽수 | 301 | ||
판형 | 152*223, 각양장 | ||
가격 | 27,000원 |
피식민지 타자의 얼굴을 마주 본 일본
식민지 민족운동의 영향은 문학의 표상 공간에 저항하는 피식민자를 등장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갖는 중요성은 종주국의 문학자들에게 피식민자도 ‘내면’을 갖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3·1운동 이전에 일본의 문학자들에게 식민지 조선인들의 내면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타자는 문명화에 뒤쳐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지적으로 열등하고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이며, 어떤 진보의 욕망도 없는 비개성적인 존재처럼 간주되었다. 민둥산을 배경으로 흰 옷을 입고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주름진 얼굴의 노인의 모습은 바로 망국의 민중을 상징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즉, 그들은 식민지의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다. 그런데 3·1운동을 거치면서 소설 속의 조선인들 가운데 점차 내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1운동을 통해 조선인들은 지배에 순응했던 태도의 이면에 저항의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비가시적 장소로써 조선인의 내면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3·1운동을 일본인이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파악했다. 그는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장소로서 조선인의 내면을 정의했던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나카노 시게하루는 강제추방을 당하는 조선인들의 내면에 천황에 대한 복수심을 부여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식민지적 타자 인식에서 일어난 내면의 발견은 비단 문학 내부의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타자의 내면에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3·1운동과 같은 ‘반란’에 관한 기억과 결합했을 때, 그것은 타자에 대한 항시적인 불안을 식민자의 내면에 발생시켰다. 그런 점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향해 나타났던 일본의 집단적 폭력은 조선인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낳은 우연한 사건으로 처리될 수 없다. 이때의 광기에 가까운 일본인의 폭력은 조선인은 잠재적 위협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심과 3·1운동에 대한 다분히 ‘피해망상적’ 기억이 쌍방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가정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 출신자들의 반항에 대해 일본인들이 품었던 공포는 지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기 동안 식민지적 타자를 바라보는 ‘정치적 무의식’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식민지의 재현, 우월의식, 이중성에 대하여
이 책의 3부 각각은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정황을 보여주는 세 개의 다른 사례를 다루고 있다. 제1부가 식민지의 재현을 둘러싼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의 긴장을 보여준다면, 제2부는 열등한 타자상의 이면에 존재했던 일본인의 타자에 대한 불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제3부는 타자를 일종의 방법으로 삼아 내셔널리즘과 대결했던 나카노 시게하루의 문학적 저항을 조명하고 있다. 각 부의 내용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표상 공간」에서는 동양에 대한 표상 행위를 독점했던 유럽과 달리 제국 일본은 타자의 표상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술한다. 제국 일본은 동화정책이 낳은 식민지 출신의 ‘탁월한 모방자’에게 부분적으로 표상의 권한을 허용했고, 식민지 표상의 해석을 둘러싸고도 식민지 지식인들의 반응과 항의에 응답을 요구받았다. 이처럼 근대 일본의 식민지를 둘러싼 표상 공간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가 통용되는 세계이기는커녕, 일본이 오리엔탈리즘의 주체가 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재조일본인의 체험을 가진 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타이완 유학생들이 쓴 일본어 소설, 그리고 장혁주가 극본을 쓰고 무라야마 도모요시가 연출한 일본어연극 〈춘향전〉을 다룬다.
제2부 「불온한 타자와 제국의 생명정치」에서는 근대 일본의 타자 인식이 식민지주의적 우월 의식만이 아니라 식민지적 타자에 대한 깊은 공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다룬다. 우선 야나기 무네요시가 3·1운동을 경험하면서 조선인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과정을 그의 1910년대 생명사상과의 연속성 위에서 검증할 것이다. 식민지 주민에 대한 근대 일본의 불안감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우생학 담론을 들 수 있다. 우생학은 대표적인 타자 배제의 담론으로 알려져 있다. 우생학이 타자 배제를 주장했던 이유는 피식민자와의 혼혈이 일본인의 ‘우수한 자질’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즉 식민지 출신자의 생물학적 열등성은 일본인의 우수성을 침식할 수 있는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우생학에게 피식민자의 열등한 자질은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질병’이자 동시에 일본의 민족적 파국을 상기시키는 공포의 원천이었다.
제3부 「나카노 시게하루와 대항의 문학」은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자인 나카노 시게하루가 일본 내셔널리즘과 벌였던 사상적 대결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그는 개인을 ‘무산계급’의 일원으로 표상하는 사회주의적 상상력에 비판적이었다. 그에게 이것은 개개인을 일본 ‘민족’ 혹은 천황의 ‘신민’으로 표상하는 내셔널리즘의 논리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천황제 국가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그리면서도, 그들의 비극과 곤란을 억압받는 집단의 비극으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의 비판적 거리두기가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의 민족해방을 지지했지만, 근대 일본의 조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민중을 천황제 국가에 맞서는 정치적 주체로 호명했지만, 두 저항하는 집단의 관계에 대한 그의 묘사는 대등한 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카노가 평생에 걸쳐 수행했던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의 격투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선다는 것과 대등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여전히 그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다. 제3부는 이런 나카노문학의 가능성을 ‘대항의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 있다.
서문
제1부 |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표상 공간
제1장 ‘동화’의 유혹과 ‘민족’이라는 운명 나카지마 아쓰시 「순사가 있는 풍경」이 표상하는 식민지 조선
‘1923년’의 ‘조선인 순사’
순사가 ‘보는’ 풍경 차별과 동화의 사이에서
순사가 ‘있는’ 풍경 동화주의의 역설
왜 ‘1923년’인가? 제국의 천황과 그 이중성
오리엔탈리즘에 대항하는 타자표상
제2장 식민지 청년들의 이동과 ‘일본어 타이완문학’의 형성
탁월한 모방자들
왜 일본어인가?
‘혼종성’이라는 아이덴티티 우융푸의 소설 「머리와 몸」
문단 저널리즘이라는 권력
제국의 지식사 속의 식민지 일본어문학
제3장 일본어연극 〈춘향전〉과 ‘조선적인 것’을 둘러싼 공방전
1938년 경성의 ‘춘향전 붐’
‘조선적’이지도, ‘일본적’이지도 않는 연극
제국 / 식민지의 분할선과 두 개의 ‘모더니즘’
식민지 민족문화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주권 없는 문화의 운명
제2부 | 불온한 타자와 제국의 생명정치
제4장 타자의 반란과 하강하는 사상 1910년대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명사상을 중심으로
‘초월적 생명’에서 ‘타자의 마음’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명론
1910년대 ‘생명’의 지식장
선회하는 생기론 초월적 생명에서 조선이라는 타자로
문화적 조선독립론을 향해
제5장 ‘인종개량’의 이상과 ‘파국’의 상상력
‘인종개량’이라는 이상
우생학, ‘인종개량’을 위한 ‘학지学知’
우생결혼 이상과 ‘화류병’이라는 ‘적’
혼성화하는 제국과 우생론자의 불안
총력전 이념의 곤경
제6장 식민지는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
혼혈문제라는 아포리아
근대 일본의 인종개량 담론
‘혼혈’을 둘러싼 담론 투쟁
식민지는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
혼혈을 둘러싼 분단선
제3부 | 나카노 시게하루와 대항의 문학
제7장 ‘신민’과 ‘계급’을 넘어서는 단독성의 상상력
예술대중화논쟁과 나카노 시게하루
예술대중화논쟁의 배경 대중적 공공권의 등장과 재편
대중문화의 정치성 ‘재미’와 내셔널리즘
예술대중화론과 내셔널리즘의 공범성共犯性 나카노 시게하루의 대중화론 비판의 위상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상상력
제8장 나카노 시게하루 조선 인식의 역사성과 서사성
나카노 시게하루의 ‘예외성’
조선이라는 ‘내부적, 타자’
패전 이후의 조선 인식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서 각각의 내셔널리즘으로
조선표상의 내적 구조 이념의 과잉과 타자성의 상실
독백으로서의 연대
제9장 방법으로서의 이동과 탈내셔널리즘의 가능성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을 중심으로
‘정치 / 문학’의 이분법을 넘어
‘이화’라는 방법의 생성
1920년대 조선인도항사와 피식민자의 ‘울분’
나카노 시게하루와 내셔널리즘이라는 굴레
내셔널리즘을 둘러싼 또 하나의 비평사
참고문헌
후기
초출일람
1930년대에 출현한 식민지 출신자에 의한 ‘일본어문학’은 흔히 ‘일본어 = 국어’의 강제보급이 낳은 결과로 간주된다. 하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다. 일본어 사용이 제국의 공용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에서 강요된 것은 1938년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식민지 일본어문학’이 제국일본의 일본어 보급 정책과 무관했다는 말은 아니다. 1910년대 이후 식민지의 ‘교실’에서 실시된 일본어교육이 없었다면 ‘식민지 일본어문학’의 창작자들은 배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출신 작가들이 어떠한 언어로 어떤 내용의 문학을 만들 것인가라는 식민지 출신 작가들의 선택은 제국정부의 직접적인 통제의 ‘외부’에서 이루어졌다 (65쪽)
근대 일본에서 인종개량은 일본이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인종개량은 ‘우수한’ 인간을 늘리고, ‘열등한’ 인간의 수를 줄임으로써 달성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인간들끼리 알아서 ‘결혼’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우수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판별의 곤란함도 문제지만, 소위 ‘유전적 우성자’들이 알아서 우생결혼을 실현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현실적 난점도 크게 작용했다. (150쪽)
나카노 시게하루가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대중화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대중화의 논리가 대중의 실존성을 망각한 채, 대중을 오직 계급이라는 아이덴티티로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욕망에 이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논쟁과 병행하는 형태로 「봄바람」이란 소설을 통해 정치적 사건 속에서 발생한 비극을 끝까지의 개인적 입장에서 받아들이려 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224쪽)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점증하는 외부자에 대한 제국 주민들의 경계와 불안 심리다. 지진이라는 재난이 초래한 혼란 속에서 제국 중심부의 일본인들은 잠재되어 있던 외부자에 대한 불만과 경계심을 폭력적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피식민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인식도 또한 이러한 불안 심리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제국의 정부는 자유도항제도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일본 내의 치안 태세도 강화했다. (275쪽)
서동주 徐東周, Seo Dong-ju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고, 일본 쓰쿠바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과에서 일본 사회주의 문학의 상상력과 제국일본의 식민지주의 간의 길항관계를 분석한 논문 「移動と想像力-中野重治·帝国·視差」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세기 일본의 문학과 사상을 ‘제국’과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재독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