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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백제승 연구
백제 승려들의 구법과 전법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심경순 역자/편자
발행일 2026-04-30
ISBN 979-11-7549-047-5 (93220)
쪽수 269
판형 152*223 무선
가격 2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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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중국 남조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귀족적 성격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화적 특징은 그대로 백제 불교의 특징과 동일시되어 백제불교는 지배층 중심의 화려하고 귀족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 책은 백제 불교가 삼국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백제 불교 이면에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볐던 백제 승려들의 노고와 열정을 담고 있다. 본 책에서는 사료 속에서 산재해 있던 40여 명의 백제 승려들을 찾아 활동 지역 및 성격에 따라 구법승, 국내승, 전법승으로 구분하고, 특히 인도, 중국 등 국외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대 불교는 새로운 국가 통치 이념과 사회통합의 원리로 수용되었다.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384년 침류왕대로,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서였다. 침류왕은 이듬해 한산에 사찰을 창건하였고, 10명이 승려가 되었다. 백제는 불교 관련 필요한 경전이나 문물 등을 중국에 요청하며 불교를 빠르게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나, 백제와 중국을 오가는 사신단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고 이를 받는 데 까지는 너무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다. 또한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 한역화된 불교는 백제의 불교 본원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바다를 건너 불법(佛法)을 구하러 간 승려들, 구법승 

6세기 전반 백제 무령왕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백제의 불교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불교의 본류인 인도에 승려 겸익을 비롯해 발정, 담혜를 중국에 파견하게 되었다.

고대 구법승들의 해외 구법 활동은 개인의 신앙심이나 의지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파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외에 파견된 구법승들은 국가 운용에 필요한 인재들이였고, 백제 구법승들은 해외에서 구법 활동 후 거의 예외 없이 본국으로 귀국했다. 이는 백제 구법승들의 강한 국가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백제의 구법승이 고구려, 신라 구법승들에 비해 자국 불교 발전에 기여한 바가 가장 컸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구법승은 인도로 간 입축 구법승, 중국으로 간 입화 구법승으로 나뉜다. 백제는 인도 및 중국에 체계적인 구법승 파견을 통해 다양한 불교 사상 및 교학의 도입에 힘썼다. 특히 삼국 최초의 입축 구법승 겸익과 입화 구법승 발정, 현광을 통해 백제 불교의 대표적 사상인 계율 사상과 법화 사상이 도입되었다. 당시 백제는 교단 및 승단 정비의 필요성을 체감하였으나 중국의 한역화된 광율로는 교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인도에까지 구법승을 직접 파견하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중국에 파견된 입화 구법승으로는 6세기 담혜, 발정, 현광, 7세기 중후반 지조, 숭제가 있다. 발정과 현광은 『법화경』 관련 구법 활동을 했고, 현광은 스승 혜사로부터 『법화경』의 수행법인 법화삼매를 증득한 후 귀국 후 이와 관련된 교화 활동에 더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담혜는 귀국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전법승으로서 백제의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기도 하였다. 숭제는 7세기 말 백제 멸망 이후 활동한 구법승으로 당시 잦은 전쟁 속에서 피폐해진 백제 유민들을 위로하고, 극락 정토 왕생을 염원하는 정토신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장안에서 유명한 정토종 승려 선도로부터 칭명염불을 중시하는 정토사상 및 수행법을 익혔고, 귀국 후에는 제자 진표에게 귀국 시 가지고 온 점찰법회의 소의경전인 『점찰경』과 수행자가 간직하여야 할 자세에 대해 설한 「공양차제법」을 전해줌으로써 백제 불교가 진표를 통해 신라 불교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백제 불교에 깊이를 더한 승려들, 국내승 

국내승들은 구법승들이 도입한 새로운 불교 사상과 교학을 국내에서의 심화 연구를 통해 백제적인 계율과 불교 사상으로 확립시켜 나갔다. 담욱과 혜인은 백제에서 번역한 율장 ‘율부(律部)’에 대해 주석서 ‘율소(律疏)’를 저술함으로써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백제 계율 불교를 확립시켰다. 혜현은 구법승 발정과 현광에 의해 도입된 『법화경』의 신앙과 수행법을 받아들이는 한편, 담혜가 도입한 삼론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 발전시켰다. 혜현의 연구 및 강학은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그의 사상과 교학은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수준 높았다.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승려 지명은 백제와 신라 왕실 간 혼사에서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무왕 즉위 이후에도 왕실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며, 왕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하였다. 지명이 무왕과 선화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대규모 불사 창건 등을 주도하는 모습에서 그의 친왕권적이며, 정치외교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일본에 불법을 전하는 승려들, 전법승

백제는 이와 같이 자국의 불교 문화에 대한 발전을 바탕으로 불교의 불모지인 일본에 많은 전법승 파견하여 백제의 불교 사상과 문화, 문물 등을 전파하였으며, 고대 일본의 불교 발전에 깊이 관여했다. 

일본에서의 백제 불교의 확산과 전법승의 활동을 시기별로 1기 불교 전파기(550∼600), 2기 교단의 확립기(600∼660), 3기 전법의 확대기(660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에 활동한 백제 전법승은 담혜, 도심, 풍국, 혜총 등이 있다. 백제는 이 시기 가장 많은 전법승을 파견함으로써 백제 불교의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고대 일본 불교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2기(601∼660)는 교단이 확립되는 시기로, 백제는 624년 비구의 조부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본 불교 교단 정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륵을 통해 승정제를 도입하게 하였다. 3기(660년 이후)는 일본 내 불교의 지역적 확산 및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백제는 6세기 전법승 파견 초기부터 지배층 대상의 전법 활동과 일반 사민을 대상으로 한 교화 및 포교 활동을 함께 진행했다. 전법승들은 왕실 및 지배계층을 대상으로 전법 활동을 진행하면서 일본의 불교 사상 및 교학, 계법, 제도 및 정책 등 사회 상부 구조에는 많은 영향을 미쳤고, 660년 전후 도일한 의각이 제자들과 대중들을 정진시키는 모습은 전법승에 의한 불교의 지역적 확산 및 대중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본에 정착한 도래인들은 백제 전법승과 함께 일본 불교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들 중 다수는 중국에서 구법활동 후 귀국하여 중요 직책에 등용되었고, 일본 불교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7세기 후반 활동한 도소와 왕인 후손 행기는 전국적인 대규모의 사회구제활동을 통해 일본 내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처럼 백제승들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감으로써 백제 및 일본에서 불교가 성공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나아가 고대 동아시아 불교 문화 확산의 중요한 매개자로서 백제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머리말

 

제1장 |  백제의 불교 수용과 구법승의 활동

계율 불교의 도입과 겸익

법화 불교의 도입

삼론학의 도입과 담혜

정토종의 도입과 숭제

구법승 활동의 특징과 성격

 

제2장 |  백제의 불교 확립과 국내승의 활동

계율 불교의 확립

법화 불교의 완성과 혜현

미륵 신앙의 발전

국내승 활동의 특징과 성격

 

제3장 |  백제 불교의 확산과 전법승의 활동

백제 불교의 전파

교단의 확립과 관륵 

전법의 확대

전법승 활동의 특징과 성격

 

 

맺음말

백제승일람

참고문헌

겸익은 국내의 미비한 율을 구하고자 입축 구법승으로서 머나 먼 인도로 구법활동을 떠났고, 중인도 지역에서의 구법활동을 통해 오부의 율과 논장을 가지고, 인도 승려와 함께 귀국하였다. 입축 구법승의 귀국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법현과 함께 구법활동을 떠났던 도정은 중인도에 도착한 후 사문의 법칙이나 승려들의 위의와 촉사에 볼 만한 것이 많음을 보고, 중국에서 승려들의 계율이 훼손되어 있음을 탄식하며, 인도에 머물며 돌아오지 않았다. -46쪽

 

당시 중국 내 주석서 번역 및 편찬 상황을 살펴보면, 일찍이 중국에서는 『십송율』의 주석서 또는 강요서가 4세기 중엽부터 한역되기 시작하였다. 「비니모경」, 『살바다부비니마득륵가경』, 『살바다비니비바사』가 한역되었고, 『사분율』의 경우 7세기 많은 율소가 작성되었다. 고려 의천이 엮은 『신편제종교장총록』에 따르면 수나라 승려 지수가 『사분율소』를 지었고, 당나라 승려 법려 또한 『사분율소』를 남겼다. -113쪽

 

혜만 이전 시기는 선종이 형성될 때까지의 전사로, 그 세계는 ‘보리달마-혜가-나선사’로 이어진다. 이때는 ‘선종 형성기’로, 대부분의 선승들은 정주하는 절은 없고, 각지를 돌아다녔다. 수당대에 들어와서도 이 현상은 계속 존재했고, 도소가 입당한 당 전기까지 많은 선종의 부유승려 집단이 존재했다. 이 선승집단은 빈곤한 생활 환경과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혜만 등이 그 시대 선승의 리더로서 사회의 하층민중들을 동정하여 그들을 도와주고자 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230쪽

심경순 沈敬順, Sim Kyoung Soon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석사(한국사 전공). 전주대학교 문학박사(한국고대사).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대학교 사학과 강사. 논문으로 「7세기 백제 도래인 승려 도소의 생애와 활동」(2024), 「백제불교와 일본 고대 불교의 발전」(2022), 「『日本書紀』 百濟 관련 기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검토」(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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