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나병철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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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5-07-10 | ||
ISBN | 979-11-5905-559-1 (93800) | ||
쪽수 | 544 | ||
판형 | 152*223, 각양장 | ||
가격 | 43,000원 |
문학을 감각의 사유로 다시 묻다
『존재의 물결과 타자의 문학』은 존재론적 문학 이론서로, 문학이 단지 의미를 재현하거나 이념을 전달하는 장을 넘어, 감각적 실재와 타자성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를 “존재의 물결”이라 부르며, 문학이 포착하는 세계란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낯선 감응과 파열이 밀려드는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학을 통해 타자와 실재를 윤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며, 현대문학이 우리에게 세계와 존재에 대한 새로운 리듬을 제안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파동처럼 밀려오는 감각의 층위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존재의 물결’이라는 개념을 다양한 국면에서 분석한다. 1~2장은 타자의 윤리성과 존재 감각의 출현을 다루며, 이후 장에서는 ‘잠수하는 민중’, ‘귀환 없는 타자’, ‘수행성’, ‘실재계의 혁명성’ 등 문학 속에 나타나는 비재현적 감응 구조들을 추적한다. 이는 정신분석학, 탈구조주의, 정동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깊은 이론적 탐색이자, 민족·계몽·혁명이라는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문학을 감각적 실존의 장으로 재위치시키는 시도다. 문학은 여기서 언어의 기호를 넘어, 실재의 파동을 언뜻 스쳐가는 윤리적 경험으로 다가온다.
의미의 시대를 넘어, 감응의 문학으로
『존재의 물결과 타자의 문학』은 문학이 어떻게 세계의 구조를 해석하는지보다, 세계가 우리에게 도착하는 순간을 감각하게 만드는가를 묻는다. 이는 타자, 실재, 존재와 윤리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만든다. 저자는 문학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각의 층위, 언어화되기 이전의 파열과 충격의 흔적들을 되살리며, 문학이 여전히 사유와 감응을 일으키는 통로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은 문학의 현재를 윤리적으로 성찰하고자 하는 연구자와 독자 모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들어가며
제1장 사상의 뭇별들과 물결의 도전
1. 우리가 아는 세계와 모르는 세계
2. 사상과 물결-역사적 주체와 타자의 존재론
3. 제국의 폭력과 존재의 물결
4. 인식론과 존재론의 결합-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5. 상상적 공동체를 넘어선 정동적 공동체
6. 민중적 민족사상의 대동맥과 정동적 공동체의 모세혈관
7.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스의 유령, 정동정치
제2장 존재의 물결과 타자의 문학
1. 근대성 신화의 해체-‘존재의 빛’에서 ‘존재의 물결’로
2. 타자의 존재론으로의 전환-‘들길의 화음’에서 ‘오리배의 화음’으로
3. ‘타자의 은폐’에서 ‘타자의 추방’으로-젠트리피케이션의 권력
4. 타자의 문학-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는 무기
5. 타자의 문학의 새로운 모험-정동의 식민화와 ‘들불’의 반격
6. 인식과 실천의 단절을 넘는 물결
7. 왜 페미니즘은 물결이 되는가-「경영」, 「맥」과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8. 물결과 사상의 결합으로 운동을 업데이트하는 페미니즘
9.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페미니즘
제3장 은폐된 타자의 귀환-사상과 물결의 결합
1. 사상에서 물결로-다양한 사상들의 합류
2. 탈식민지적 존재론과 정동적 공동체
3. 리얼리즘과 에로스
4. 사상과 물결의 결합-타자의 주도권과 지식인의 위치
5. 견고한 모든 것을 녹이는 능동적 정동-이기영의 『고향』
6. 법적 폭력과 인간의 물결-강경애의 『인간문제』
제4장 잠수의 시대와 민중의 해체
1. 지식인과 민중의 거리-마지막 지식인의 다가섬
2. 병 속의 민중과 신체의 진리-김남천의 「길 위에서」
3. 민중의 해체와 존재론적 거리-「철령까지」, 「기행」
4. 물속에서 듣는 타자의 부름-「녹성당」
5. 대화적 모랄과 ‘심정’의 자의식-『낭비』
6. 여성 타자의 모랄과 마지막 물결- 「경영」, 「맥」
제5장 민중 프로젝트와 수행적 물결
1. 민중의 자기구성적 과정-정체성을 넘어선 물결
2. 존재론적 지형도의 유동성
3. 역사적 주체의 생성과 정동적 물결의 확산-운동과 문학의 정동적 수행성
4. 상상적 공동체에서 정동적 공동체로-민중운동은 어떻게 민족적 차이를
5. 정동적 변혁운동-최일남의 「흐르는 북」
6. 내면의 강과 연대의 물결-‘저문 강’에서 「쇳물처럼」으로
7. 감성의 분할을 해체하는 자기구성적 연대-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
제6장 타자의 추방과 우리가 모르는 세계
1. 민중의 해체와 정동적 공동체의 위기
2. 관계의 상실과 은유로서의 난민의 시대
3. 타자의 추방과 존재론적 젠트리피케이션
4. 게임 사회와 존재론적 반격
5. 민중적 리얼리즘에서 타자의 틈새 미학으로
7. 게임 사회에 저항하는 게임 미학-〈오징어 게임〉
7. 타자에게 응답하는 슈퍼 히어로 서사-〈모범택시〉
8. 은유적 재난의 시대의 미학-〈다음 소희〉
9. 우울의 시대와 정동적 공동체의 소망-이서수의 「미조의 시대」
10. 감성의 분할의 역류-김이설의 「반 뗀 라 지?」
11. 혐오의 체제에 대한 타자의 반격-최윤의 「소유의 문법」
제7장 실재계적 물결로서의 혁명
1. 첫 번째 혁명-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1987〉
2. 감성적 혁명-미학적 민주주의의 모세혈관
3. 자기지시적 변혁운동-법과 윤리 사이에서의 해체
4. 두 번째 혁명과 말할 수 없는 공백-황정은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5. 여성적 변혁운동과 두 개의 틈새 공간-윤이형의 「작은 마음 동호회」
6. 존재의 물결로서의 혁명-이인휘의 『건너간다』
7. 세 번째 혁명-‘사상 이후의 사상’과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찾아보기
그처럼 타자에게 다가서는 순간은 정동적 공동체의 존재가 증명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앞서 살폈듯이, 정동적 공동체는 존재의 물결을 일으켰던 기억의 성좌가 텅 빈 동질성을 채울 때 확인되는 집 없는 집이다. 기억의 성좌는 상징계에서 상실한 시간을 실재계에서 창조적으로 고양시키며 다시 한번 물결을 일으키게 해준다. 그것은 마치 상실한 총체성의 별들을 부재하는 총체성으로 회생시키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집 없는 집으로서의 정동적 공동체는 영혼의 모험을 통해 확인되는 루카치의 ‘상징계에 부재하는 총체성’과도 같다. 정동적 공동체가 확인되는 순간은 부재에서 존재를 창조하며 다시 한번 영혼의 동요와 존재의 물결을 일으키는 시간이다. (137쪽)
반면에 ‘나’의 아픔은 타자를 외면할 수 없어 육체적 절박성을 느끼는 신체의 윤리에서 생긴다. ‘나’는 그런 ‘일신상의 모랄’ 때문에 끝없이 떠오르는 타자에 대한 생각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제 과거의 사상가와 지금의 기술자 간의 차이는 지식인과 타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되었다. 김남천은 회생불가능한 사상 대신 일신상의 진리를 말함으로써 노동자와의 연대를 고통받는 타자와의 관계로 재조명하려 했다. 고통받는 타자란 언제든 공사장의 버려진 희생자가 될 수 있는 민중을 말한다. ‘나’의 착찹함이 희생자와 타자를 외면할 수 없는 데서 생긴다면, K기사는 동일성 체제의 큰 목표와 공리에 따라 쓸모없는 타자를 지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274쪽)
능력주의를 외치면서 죽음정치를 은폐하는 침묵 사회에서는 마치 아무런 재앙도 일어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형식적 공정성에 의해 침묵이 유지되더라도, 정동적 식민지에서 타자가 혐오, 차별, 사고, 자살로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타살과도 같다.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직접 총으로 쏘지 않아도 타자에게 셔터를 내리는 사회는 침묵의 방음 총을 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루저의 사살은 결코 단순한 드라마적 과장이 아니다. 게임 사회의 방음총은 실제로 능력주의를 보이게 만들며 사라진 타자를 보이지 않게 제거한다. 공정성과 합리성, 자발적 참여를 앞세운 절차적 민주주의가 포스트전체주의적인 죽음정치 체제로 변질되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422쪽)
나병철 羅秉哲, Na Byung-chul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소설의 이해』, 『환상과 리얼리티』, 『은유로서의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 연대』, 『친밀한 권력과 낯선 타자』, 『문학과 시각성과 보이지 않는 비밀』, 『반복의 문학과 진실의 이중주』, 『정동정치와 언택트 문학』 등이 있다. 역서로는 『문화의 위치』(호미 바바), 『냉전시대 한국의 문학과 영화』(테드 휴즈), 『서비스 이코노미』(이진경), 『프롤레타리아의 물결』(박선영), 『해체론과 변증법』(마이클 라이언),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정치와 문화』(마이클 라이언), 『문학교육론』(제임스 그리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