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왕부지 | 역자/편자 | 서성 |
|---|---|---|---|
| 발행일 | 2026-04-15 | ||
| ISBN | 979-11-7549-053-6 (94820) | ||
| 쪽수 | 259 | ||
| 판형 | 152*223 양장 | ||
| 가격 | 24,000원 | ||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섭랑(葉朗) 교수는 중국 고전시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라면, 중국 미학사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은 왕부지와 섭섭(葉燮)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부지는 학문을 닦고 공명을 구한 시기는 태어난 때인 1619년부터 청나라 군대가 북경에 입성한 1644년까지이다. 왕부지는 7세에 『십삼경』을 통독하였다. 14세에 수재가 되었으며, 16세에 시 쓰기를 배우고, 24세에 무창(武昌)에서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26세 때인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북경이 청나라에 함락되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함과 동시에 왕부지의 배움의 일은 급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시기부터 왕부지는 1650년 32세의 무렵까지 청군이 호남까지 내려오는 상황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호남과 호북을 다니며 정부군의 전략에 참가하였다. 남명 정권 내부의 부패로 왕부지는 죽을 위기에 몰리면서 계림으로 피하여 들어갔고, 은거를 결심하기로 한다.
은거하며 저술에 몰두하기 시작한 왕부지는 1651년 33세부터 1692년 74세까지 약 40년간 『주역』과 『춘추』를 강론한 최초의 이론 저서인 『노자연(老子衍)』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멸망과 민족의 고난 앞에서 문명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문화의 성격을 숙고하였다. 사상과 문화의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저술은 경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 천문, 역법, 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까지 미쳤다.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당시평선』은 약 5만 수의 당시 가운데 558수를 골라[選] 평어[評]를 붙인 책이다. 총 4권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수록 시인은 147명이다. 권1은 악부가행(樂府歌行), 권2는 오언고시, 권3은 오언율시(오언배율 포함), 권4는 칠언율시로 되어있다.
책 전체를 합산하여 시가 가장 많이 실린 시인을 순서대로 보면 두보 91수, 이백 43수, 왕유 25수의 순이다. 왕부지가 가장 높이 평가하고 주목한 시인은 이백, 왕유, 두보였고, 이 가운데 두보에 대해서는 칭찬한 부분도 있지만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당시 평가와 비교했을 때 심전기, 송지문, 저광희, 위응물을 높이 평가하였고, 반대로 이기, 백거이, 원진, 한유, 맹교, 허혼, 교연 등은 혹평하였다.
왕부지 시평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경』부터 명대까지의 역대의 시를 하나의 시관(詩觀)으로 꿰뚫어 보면서 평했다는 점이다. 왕부지의 시평 방식은 틀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스럽다. 논의할 만한 점이 있으면 수시로 길게 썼으며, 논의할 만한 점이 적거나 없으면 간결하게 한두 글자로 평하기도 했다.
왕부지가 문명사의 시각에서 역대의 시를 바라보고 당대 이래의 시의 내용과 풍격을 비판한 것은 시를 통해 본 정감의 변천이 점점 하락하고 그 결과 명의 멸망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가 세 권의 평선(評選)을 편찬한 것도 공자의 산시(刪詩)를 본받아 정감을 바로 세우려는 뜻에서 나온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문명사의 시각에서 타락해가는 인간의 정감을 재구축하려는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언고시
태종황제(太宗皇帝) 1수
가을날-유신체를 본떠(秋日效庾信體)
왕적(王績) 1수
석죽을 읊다(石竹詠)
형상옥(邢象玉) 1수
고의(古意)
최액(崔液) 1수
답가사(踏歌詞)
왕발(王勃) 1수
바람을 읊다(詠風)
설직(薛稷) 1수
가을에 도성으로 돌아가며 섬서 십리에서 지음(秋日還京陜西十里作)
진자앙(陳子昻) 1수
나그네를 보내며(送客)
송지문(宋之問) 3수
처음 애구에 이르러(初至崖口)
밤에 동쪽 정자에서 마시며(夜飮東亭)
숭산에 사신으로 갈 때 구령을 지나며(奉使嵩山途經緱嶺)
장열(張說) 1수
잡시(雜詩)
장구령(張九齡) 7수
감우 4수(感遇 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연초에 속현을 순시하다 고안의 남루에 올라 감회를 말하다(歲初巡屬縣登高安南樓言懷)
팽려호에서(彭蠡湖上)
여산에 들어가 폭포를 올려다보며(入廬山仰望瀑布水)
왕구(王丘) 1수
영사(詠史)
저광희(儲光羲) 6수
마름 따기(采菱詞)
농가에서 보이는 대로(田家卽事)
왕유의 ‘우연히 짓다’에 화답하며 2수(同王十三維偶然作 二首)
제1수
제2수
조어만(釣魚灣)
종남산에 은거하여 살며 소 시랑께 바치다(終南幽居獻蘇侍郞)
왕유(王維) 4수
위수의 농가(渭川田家)
종남산 별장(終南別業)
서시를 노래함(西施詠)
산관에서 숲과 대밭 쪽 사십오 리 돌길을 굽이 돌아 황우령에 이르러 황화천을 보며(自大散以往深林密竹磴道盤曲四五十里至黃牛嶺見黃花川)
노상(盧象) 1수
영성에서 바람에 배를 띄우며(永城使風)
고적(高適) 2수
송중(宋中)
계문(薊門)
잠삼(岑參) 2수
늦가을 산행(暮秋山行)
구산의 서봉 초당에서 짓다(緱山西峰草堂作)
가지(賈至) 1수
우언(寓言)
최국보(崔國輔) 1수
잡시(雜詩)
최서(崔曙) 2수
산 아래에서 맑게 갠 저녁에(山下晩晴)
아침에 교애산을 떠나 태실산으로 돌아와 지음(早發交崖山還太室作)
이억(李嶷) 3수
숲속 정원에서 가을밤에 짓다(林園秋夜作)
소년의 노래 2수(少年行 二首)
제1수
제2수
이백(李白) 17수
고풍 7수(古風 七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제5수
제6수
제7수
‘서북에 있는 높은 누대’를 본떠 지음(擬古西北有高樓)
자야오가(子夜吳歌)
봄의 그리움(春思)
강동으로 가는 장 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
소무(蘇武)
종남산을 내려와 곡사 산인의 집에 들러 묵으며, 술자리를 차리고(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며(送裴十八圖南歸嵩山)
삼협을 거슬러 오르며(上三峽)
가을밤 회포를 쓰다(秋夕書懷)
봄날 홀로 술 마시며(春日獨酌)
두보(杜甫) 19수
마음을 달래며 4수(遣興 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전출새 2수(前出塞 二首)
제1수
제2수
후출새 2수(後出塞 二首)
제1수
제2수
신혼의 이별(新婚別)
노년의 이별(垂老別)
가족 없는 이별(無家別)
석호의 관리(石壕吏)
성도부(成都府)
위팔 처사에게(贈衛八處士)
미피의 서남에 있는 누대(渼陂西南臺)
진구를 지나며(過津口)
만주에서 묵으며(次晩洲)
삼운(三韻)
적곡(赤谷)
원결(元結) 1수
고향을 떠나는 슬픔(去鄕悲)
이화(李華) 1수
운모천에서 진무릉을 그리며(雲母泉懷陳武陵)
유복(劉復) 1수
절에서 살며 맑은 새벽에(寺居淸晨)
오균(吳筠) 1수
여산 오로봉을 유람하며(遊廬山五老峰)
유장경(劉長卿) 1수
회인현 남호에 묵으며, 동해현의 순 처사에게 부침(宿懷仁縣南湖, 寄東海荀處士)
이신(李紳) 1수
서하사 봉우리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登棲霞寺峰懷望)
위응물(韋應物) 14수
‘걷고 걸어 또 쉬지 않고 걸어가니’를 본떠 지음(擬古行行重行行)
‘추위 속에 한 해가 저무는데’를 본떠 지음(擬凜凜歲云暮)
‘밝은 달은 교교히 비치고’를 본떠 지음(擬古明月何皎皎)
한가히 살며(幽居)
도연명체를 본떠(效陶彭澤體)
정장원을 보내며(送鄭長源)
노숭의 ‘가을밤’을 받고 화답하며(酬盧嵩秋夜見寄)
동덕사에서 비가 내린 후-원 시어와 이 박사에게 부침(同德寺雨後, 寄元侍御李博士)
여름밤에 노숭을 그리며(夏夜憶盧嵩)
남령 정사(藍嶺精舍)
낙양의 친구를 두고 떠나며(留別洛京親友)
서남 언덕에 올라 집터를 잡으려다 비를 만나고, 대숲을 찾다가 뜻밖에 풍수 강가의 빈터에 이르렀는데, 몇 리에 걸쳐 맑은 시내에 나무가 무성하여, 풍광이 감상할 만했다(登西南岡卜居 遇雨, 尋竹浪至灃壖, 縈帶數里, 淸流茂樹, 雲物可賞)
개원 정사에서 놀며(遊開元精舍)
약초를 심으며(種藥)
덕종황제(德宗皇帝) 1수
중양일에 곡강의 정자에서 연회를 베풀며, 여섯 운으로 지은 시에 ‘청’(淸)자 운을 쓰다(重陽日賜宴曲江亭賦六韻詩用淸字)
장휘(張翬) 1수
서하사에서 놀며(遊棲霞寺)
호구귀(虎丘鬼) 2수
호구산 석벽에 적다 2수(題虎丘山石壁二首)
제1수
제2수
조업(曹鄴) 5수
사첨이 쓴 ‘송공을 시종하며 희마대에서 병 때문에 떠나는 공령을 보내다’에 화답하며(和謝豫章從宋公戲馬臺送孔令謝病)
나부를 대신하여 태수를 꾸짖다(代羅敷誚使君)
반악의 ‘금곡원의 연회’에 화답하며(和潘安仁金谷集)
박명한 첩(薄命妾)
사망루(四望樓)
조하(趙嘏) 1수
분수 강가의 술자리에서 이별하며(汾上宴別)
왕부지는 집단적 지향인 지(志)와 개인적 지향의 뜻[意]을 구분하고,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과 개인적 욕구인 욕(欲)을 구분하였다. 그는 “‘시는 지(志)를 말한다’고 했지 ‘뜻[意]을 말한다’고 하지 않았다. 시는 정(情)을 나타내는 것이지 욕(欲)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은 지(志)와 통하고, 집단적 지향인 공의(公意)는 정(情)에 준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일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맹자』 「고자(告子)」의 말을 빌려 ‘본성을 잃은 것’이고, 이를 시로 표현하는 것은 『시경』에는 거의 없으며, 양한위진남북조와 초당까지도 설령 있다고 해도 삼갈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보는 부족한 재물과 누추한 거처와 아쉬운 처첩의 시중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문제는 이후의 시인들이 두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고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아가 글자를 조탁하고 운율을 맞추고 기승전결의 틀에 넣으면서 시는 더욱 지리멸렬하게 변하였다.
왕부지가 문명사의 시각에서 역대의 시를 바라보고 당대 이래의 시의 내용과 풍격을 비판한 것은 시를 통해 본 정감의 변천이 점점 하락하고 그 결과 명의 멸망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가 세 권의 평선(評選)을 편찬한 것도 공자의 산시(刪詩)를 본받아 정감을 바로 세우려는 뜻에서 나온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문명사의 시각에서 타락해가는 인간의 정감을 재구축하려는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평선』 해설」 중에서
저자
왕부지 王夫之, Wang Fuzhi
청대초기(1619~1692)에 활동한 뛰어난 사상가이자 역사학자, 시인, 평론가이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외전(周易外傳)』, 『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 『상서인의(尙書引義)』,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 『노자연(老子衍)』, 『장자통(莊子通)』 등이 있고, 문학과 관련된 저서로는 『당시평선(唐詩評選)』 이외에 『시광전(詩廣傳)』, 『초사통석(楚辭通釋)』, 『고시평선(古詩評選)』, 『명시평선(明詩評選)』, 『강재시화(薑齋詩話)』 등이 있다.
역자
서성 徐盛, Seo Sung
북경대학교에서 중국고대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위진남북조수당 문학이다. 한국열린사이버대 및 배재대 교수 역임. 주요 관심 분야는 중국고전시, 『삼국지연의』, 명청삽화 등이며, 중국고전시와 관련된 주요 저서로는 『양한시집(兩漢詩集)』, 『당시별재집(唐詩別裁集)』, 『가헌사(稼軒詞)』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