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심경호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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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05-30 | ||
| ISBN | 979-11-7549-025-3 (94800) | ||
| 쪽수 | 869 | ||
| 판형 | 152*223 각양장 | ||
| 가격 | 72,000원 | ||
조선의 방대한 사상을 지적 대상으로 삼은 이익
『성호사설』(『사설』)은 천지(天地)·만물(萬物)·인사(人事)·경사(經史)·시문(詩文)의 5개 부문으로 지식학의 규모가 광대하다. 당시 조선에서 이토록 광범위한 사상을 지적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이익 외에 달리 없었다. 이익은 통념으로는 결코 확정지을 수 없는 문제들이 산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스스로 탐지한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명하고자 고투했다. 서적을 읽다가 요점으로 간주되는 사항이나 의문시되는 사실, 생활세계 속에서 접하는 생태자연과 물질요소들을 지칭하는 개념, 떠도는 이야기에서 접한 어휘나 환상적인 단어 등등, 이것들은 이익의 의식 속에 코퍼스로 현시되었다.
이익은 의식에 떠오른 코퍼스를 수시로 하나하나 고찰했다. 기존의 해설들 가운데 일부는 인증성(認證性)이 없어 견고한 지식으로 인정할 수 없었으며, 충실한 해설이 있더라도 의미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인식주체로서 견고한 존재가 아니며, 사상(事象)의 의미는 차연(差延)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것들은 일정한 범주에 따라 분류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인과나 계기의 특성을 찾을 수 없었다. 세계와 환경에 대한 지식의 한계 때문에 만족할만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한 한계를 깨달을 만큼 이익은 성실한 탐구자였다. 『사설』의 항목 하나하나는 모두 지적 도발의 흔적이다.
『성호사설』 속 이익의 지식활동의 생명성과 역동성 포착
『사설』은 이익의 조카 이병휴(李秉休)에 의해 정리되었으나 인쇄되지 못했다. 서너 종의 필사본 이본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것은 이병휴의 후손 이돈형(李暾衡) 씨 구장 30권 30책이다. 안정복은 이익의 부탁으로 『사설』의 항목 내용들을 산절하고 재분류하여 『사설유선』을 이루어, 그것이 20세기 초에 활자화되었다.
저자는 이익의 학술 내용을 견고한 결정체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지식활동의 생명성과 역동성을 포착하고자 했다. 특히 『사설』의 구조, 항목 설정 이유, 지식정보 집성 경로와 분석 방식, 변정·상론·제안의 핵심 내용, 이념과 실제의 관계 등을 개괄한다. 『사설유선』에서 항목을 추가하거나 내용을 산절한 사실이 대조된 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이익이 변정·상론·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참조한 지식정보원이 무엇이었는지도 밝혀보고자 한다. 『『성호사설』의 사유방법』은 이익의 사유방법을 밝히고 조선 후기 학문의 역사를 조망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머리에
제1장 서론
1. 『성호사설』의 성립
2. 성호 이익의 학문 궤적
3. 『성호사설』 연구의 방법
제2장 『사설』의 지식정보 집성과 분석
1. 『사설』의 성격 규정
2. 『사설』의 지식정보 원천
3. 『사설』의 추리논증
제3장 경해(經解) 신론
1. 본성론과 감정론, 수양론과 벽이단론
2. 경학설
3. 예악 쟁점의 변정
제4장 역사학과 상론(尙論)
1. 역사서술과 상론의 원칙
2. 동북지역사와 자국사
3. 인물의 상론
이익의 조카 이병휴는 중부 이잠李潛의 후사가 되었다. 이익이 1746년 부인상을 치르면서 상위일록을 짓자 1747년에 이병휴가 의문점을 질문했으므로, 이익이 그에 답하면서 자설을 정비했다. 상위일록은 상제일록喪祭日錄 혹은 상위록喪威錄이라고도 불렀다. 1748년과 1749년에는 이익의 문고文稿를 검토하여 의문 사항을 이익에게 서찰로 물었다. 1763년 12월 이익이 운명한 이후, 당시 53세였던 이병휴는 이후 이익의 문집을 엮는 데 전념했다. 이삼환을 양자로 들였다가 뒤에 아들 이명환李鳴煥을 낳았다. (187쪽)
이익은 주희의 불교비판설을 거듭 인용하고 동의의 뜻을 표명했지만, 주희의 심성수양 개념을 불교와 연계시켜 해석하기도 했다. 즉, 주희의 「조식잠調息箴」에 ‘코끝에 흰 것이 있으니, 나는 그것을 본다[鼻端有白, 我其觀之]’라고 했는데, 이는 능엄경楞嚴經의 ‘눈으로 코끝을 보고 마음은 배꼽 밑에 모은다[目視鼻端, 注心臍腹]’라는 말과 같아, 양생결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일⼀을 지키고 화和에 처하여 1천 2백세를 간다[守⼀處和, 千⼆百歲]’라고 한 말은 장자 「재유在宥」의 광성자廣成子 말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420쪽)
이익은 상복에서 존尊의 같고 다름에 주목하라고 주장하고, 춘추좌씨전이 소목昭穆 역사逆祀 비판의 미의를 몰랐다고 비판했다. 춘추 문공 2년 8월 정묘에 “태묘에서 체제를 지내고서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위에 모셨다”라고 했고, 춘추좌씨전에서는 “희공은 민공의 서형이다. 민공을 계승하여 왕에 올랐으므로 종묘의 좌차가 민공의 아래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민공의 위로 올려 모셨기 때문에 이를 기록하여 비난한 것이다”라고 했다. (611쪽)
심경호 沈慶昊, Sim Kyung-ho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일본 교토(京都)대학 문학박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역임.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 역임. 현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한시의 성좌』, 『김삿갓 한시』, 『(증보)한문산문미학』, 『간찰』, 『참요』, 『내면기행』, 『산문기행』, 『국왕의 선물』 1-2, 『옛 그림과 시문』, 『한국의 석비문과 비지문』, 『호, 주인옹의 이름』, 『한국 과문(科文)의 양식과 시제(試題)』, 『응제(應製)와 제술(製述)』 등 40여 종이 있다. 역서로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금오신화』,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1-2, 『삼봉집』, 『기계문헌』 1-6,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강의-논어』 1-3, 『육선공주의』 1-2(공역), 『동아시아 한문학 연구의 방법과 실천』, 『도성행락(圖成行樂)-명청 문인의 화상 제영』, 『여유당전서(시)』(네이버 지식백과), 『춘향전·춘향가』, 『을병조천록』, 『신편신역 청련집』, 『정제두·이충익·심대윤』(한국사상선 9), 『신편신역 매월당전집』 1-6 등 40여 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