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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고문소증 1
저자 염약거 역자/편자 이은호 역
발행일 2023.06.27
ISBN 979-11-5905-797-7
쪽수 556
판형 152*223 양장
가격 5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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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경전 《상서》의 위조를 밝혀내다

《상서》는 고대 성왕과 현신의 언행을 기록한 유가의 경전이자 역사서로서, 공자가 《시》와 함께 필수 교재로 선택한 교과서였다. 유가의 탄생과 한대 학관이 세워진 이래로 최고의 경전의 하나로 군림하면서 지존의 위상을 가진 《상서》를 “위조된 것”으로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천여 년 동안 지속된 공안국전 《상서》의 자체적 모순과 허점의 노출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공자 이래 한 사람이라는 주자에게도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염약거는 주자의 의변을 자기 학설의 보호막으로 삼아 자신의 학문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성법과 경도를 위배하였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선대 학자들이 주창한 방법론과 결과물을 운용하여 역사적인 의변작업을 완성한 저작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고증학 불멸의 명작 《상서고문소증》이다. 비로소 경전의 지위에 있던 고문 《상서》는 위작으로 판명되었고, 위고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전복되고 말았다. 이는 경학학술사상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평가된다. 


문헌적 증거와 역사적 증거로 위작을 고정하다

『상서고문소증』은 “제1. 전후 《한서》에 기록된 고문편수가 지금과 다름을 논함”을 시작으로 한 가지 문제에 대해 한 가지 의론을 하여 모두 128편을 입론하였는데, 중간에 28~30, 33~48, 108~110, 122~129 등 총 30조가 빠져 있다. 염약거는 매작의 선행연구에서 개창한 증거수집방법을 운용하여, 문헌적 증거와 역사적 증거 두 방면으로 공씨본의 위작을 고정하였다. 제1에서 제80(권1~권5)까지는 문헌적 증거이고, 제81에서 제96(권6)까지는 역사적 증거이며, 제97에서 제112권7까지는 위고문 내용의 모순을 폭로하였고, 제113에서 끝권8까지는 오역ㆍ주희ㆍ왕충운ㆍ매작ㆍ학경ㆍ정원ㆍ요제항ㆍ마숙 등의 의변설을 인용한 것이다. 


‘고증학 불멸의 명작’ 손자 염학림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다

염약거의 《상서고문소증》 8권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성경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여러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그 불멸의 연구성과는 그대로 역사에 묻히고 다음 세대를 기약할 뻔했었다. 염약거 생존 당시, 《상서고문소증》은 단지 초본만 유전되었고 판각간행되지는 못했다. 염약거가 세상을 떠난 40년 후 그의 손자 염학림에 의해 회안에서 판각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건륭 10년 평음 주씨 권서당본이다. 건륭 37년 《사고전서》가 수찬되면서 이 판본이 수록되었고, 원각은 수몰 폐기되었다. 그 후 가경 원년 오인기의 천진각본, 동치 6년 전당 왕씨 진기당 중수본, 왕선겸의 《청경해속편》본이 만들어졌다. 각본 이외에도 초본 2종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항세준 발문의 청초본 5권으로 현재 중국국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청 심동 초본 5권으로 현재 호남성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말

상서고문소증 서序 [황종희黃宗羲]

상서고문소증 후서後序 [염영閻詠]

상서고문소증 지識 [염학림閻學林]

상서고문소증 교열성씨較閱姓氏


상서고문소증 권1

제1. 전후前後 《한서》에 기록된 고문古文 편수가 지금과 다름을 논함

제2. 고문古文은 서진西晉의 난亂 때 없어졌으므로 만출晩出 서書의 위작僞作을 증명할 수 없음을 논함

제3. 정강성鄭康成 주注 고문古文 편명이 지금의 고문과 다름을 논함

제4. 고문古文의 서제書題 편차編次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함을 논함

제5. 유흠 《삼통력三統曆》에 보이는 고문 《무성武成》이 지금의 고문과 다름을 논함

제6. 고문古文 《이훈伊訓》이 《삼통력》 및 정주鄭注에 남겨져 있음을 논함 

제7. 만출 《태서》에 유독 《묵자》에서 인용한 세 문장이 빠진 것이 큰 오류임을 논함

제8. 《좌전》에 실린 일식지례日食之禮가 지금 고문에 계추季秋로 잘못 기록된 것을 논함

제9. 《좌전》 “덕내강德乃降”이 《대우모》에 잘못 들어가 있음을 논함

제10. 《논어》 “효호유효孝乎惟孝” 구절이 지금 고문에 잘못 단구된 것을 논함

제11. 《맹자》 인용 《서》 가운데 지금 고문에 잘못 찬입된 두 곳을 논함 

제12. 《묵자》 인용 《서》가 지금 고문에 함부로 바뀌어 번역된 것을 논함

제13. 《좌전》 인용 《하훈夏訓》이 지금 고문 《오자지가》에 억지로 찬입된 것을 논함

제14. 《맹자》에 인용된 금문은 지금의 고문과 합치하지만, 고문은 지금의 고문과 합치하지 않음을 논함

제15. 《좌전》, 《국어》 인용 일서逸書가 모두 지금 전하는 것을 논함

제16. 《예기》 인용 일逸 《서》는 모두 지금 고문에 보이는데, 한 편을 잘못 나누어 두 편이 된 것을 논함


상서고문소증 권2

제17. 공안국 고문학 원류의 진위를 논함

제18. 조기趙岐는 일찍이 고문古文을 본 적이 없음을 논함

제19. 공안국 주注 《논어》가 지금의 《서》전傳과 다름을 논함

제20. 고문 《효경孝經》으로 《서》를 증명함을 논함

제21. 고문 《예경禮經》으로 《서》를 증명함을 논함

제22. 《서》전傳은 《모시毛詩》전傳을 사용했음을 논함

제23. 만출 《서》가 고문을 답습하지도 금문을 답습하지도 않았으며 복생의 것도 아니며 공안국의 것도 아님을 논함

제24. 《사기》에 고문설이 많은데 지금의 것과는 다름을 논함 

제25. 《설문해자》는 모두 고문인데, 지금 고문과 다름을 논함

제26. 만출 《무성》, 《태서》에 여전히 개원改元, 관병觀兵 구설舊說이 보존되어 있는 것을 논함

제27. 《군진》 “너에게 아름다운 묘략과 아름다운 대책이 있거든爾有嘉謀嘉猷” 등의 말을 성왕이 지었다는 오류를 논함

제28. [궐闕] 태갑太甲이 이윤에게 계수稽首할 수 없는데, 이는 《낙고》를 잘못 모방한 것임을 논함 

제29. [궐闕] 후직后稷을 선왕先王이라 칭할 수 없고 필공畢公이 4세世를 보좌할 수 없는데, 이는 《국어》를 잘못 이해한 것임을 논함 

제30. [궐闕] 유우有虞의 시대에는 간무干舞가 없었는데, 이는 《한비자韓非子》, 《회남자淮南子》를 잘못 인용한 것임을 논함 

제31.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다人心惟危, 道心惟微”가 순전히 《순자荀子》에서 인용한 《도경道經》에서 나온 것임을 논함 

제32. 고서에 이와 같은 유사함이 제법 많음을 논함


상서고문소증 권3 [전궐全闕]

제33. [궐闕] 《대우모》의 구절은 모두 원본이 있음을 논함 

제34. [궐闕] 《태서》와 《무성》의 구절은 모두 원본이 있음을 논함 

제35. [궐闕] 《논어》와 《효경》을 습용襲用했음을 논함

제36. [궐闕] 《주역》, 《상서尙書》, 《모시》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37. [궐闕] 《주례》, 《의례》, 《소대례기》, 《대대례기》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38. [궐闕] 《좌전》과 《국어》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39. [궐闕] 《이아》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40. [궐闕] 《맹자》와 《순자》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41. [궐闕] 《노자》, 《문자》, 《열자》, 《장자》를 습용했음을 논함

제42. [궐闕] 

제43. [궐闕] 

제44. [궐闕] 

제45. [궐闕] 

제46. [궐闕] 

제47. [궐闕] 

제48. [궐闕] 


상서고문소증 권4

제49. 추서追書한 것을 사실로 칭한 두 곳을 논함

제50. 잘못된 해석을 사실로 여긴 두 곳을 논함

제51. 《맹자》에서 두 곳의 《서》의 서사를 인용하여 의론한 것을 논함 

제52. 《관자》에 인용된 《태서》 사관의 말을 무왕이 한 것으로 여긴 것을 논함 

제53. 《무성》 “계해”, “갑자” 앞에 “2월”을 쓰지 않은 것은 서법書法이 아님을 논함

제54. 《태서상》 “13년 봄惟十有三年春”과 같이 시時를 쓴 것이 사서의 용례가 아님을 논함

제55. 위 《태서》가 명백하게 《한서ㆍ예문지》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고, 지금의 고문이 그것과 같음을 논함

제56. 《이아》는 “울도鬱陶”를 “희喜”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지금의 고문은 “우憂”의 뜻으로 잘못 쓴 것을 논함

제57. 《대우모》에서 고요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이 《요전》에서 후직과 설에게 양보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점을 논함

제58. 만출 《서》에 “제왈帝曰”을 더하고, “첨왈僉曰”을 찬입한 것이 당우唐虞시대의 대공大公과는 맞지 않음을 논함

제59. “중화中華”와 “문명文命” 그리고 “방훈放勳”은 모두 제왕의 호號인데, 위작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논함

제60. 위작자가 《서서書序》에 의거하여 《태갑》의 사건을 찬술한 것이 《맹자》와 일치하지 않음을 논함

제61. 이윤이 태갑 앞에서 자신의 자字를 칭한 것이 《치의》를 잘못 모방한 것이며, 또한 서열의 오류임을 논함

제62. 《주관周官》이 《한서ㆍ백관공경표》에서 나왔고 《주례》와 합치하지 않음을 논함

제63. 《진서秦誓》의 족주族誅 형벌은 《순자荀子》를 잘못 인용한 것임을 논함

제64. 《윤정》의 “옥과 돌이 모두 불탄다玉石倶焚”는 말이 위진 연간에 나온 것임을 논함


이은호 李殷鎬, Lee Eun-ho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과 입학,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중국산동사범대학 외적(外籍) 교수

현 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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