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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참군집주 3
저자 포조 역자/편자 송영정 역
발행일 2023.10.31
ISBN 979-11-5905-836-3
쪽수 356
판형 152*223 양장
가격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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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일(俊逸)한 시풍, 이백(李白)의 호방표일(豪放飄逸)을 열다

이 책은 유송(劉宋)의 시인 포조(鮑照, 414~466)의 시문에 청 말의 전진륜(錢振倫)과 민국 초의 황절(黃節), 전진륜의 손자 전중련(錢仲聯)이 주석을 가한 『포참군집주』에 대한 역주이다. 포조의 시는 다양성이 큰 특징이다. 수사 면에서 정교한 대우와 많은 전고를 활용하여, 경물을 형상화하고 정감을 구상화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은 원가(元嘉) 문단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반면 남조 민가에 흔히 사용되던 구어 속어 방언도 피하지 않고 활용하여 험속(險俗)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시의 제재도 사회의 여러 문제에서부터 자연 경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를 제재로 한 시는 86수의 악부시와 18수의 의고시가 주로 해당하는데, 포부의 피력과 우국지심의 토로, 왕실과 주군에 대한 송양, 회재불우(懷才不遇)의 불평지명(不平之鳴)과 풍자 비판, 은퇴와 명철보신(明哲保身) 사상의 노정 등 세간의 다양한 현상과 개인적 감정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목청껏 감회를 토로하여[抗音吐懷]” 우렁찬 가락을 이루는(陳祚明 『采菽堂古詩選』) 것도 이 부류의 특색이다. 자연을 제재로 한 것은 당시 성행한 산수시(山水詩)를 비롯하여 영물시(詠物詩)와 기행시(紀行詩) 등이 해당하는데, 안식 희구와 선계 동경, 고적감과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진퇴의 갈등 등을 읽을 수 있다.

성당의 대시인 두보는 747년 봄 장안에서 강남에 머물던 이백(李白, 701~762)을 그리며 지은 「봄날 이백을 그리며」 시에서 “초일절속(超逸絶俗)한 천재성”을 지닌 이백에 성심으로 감복하여(楊倫 『杜詩鏡銓』) “이백의 시는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표연한 시상은 범인들과 다르다[白也詩無敵, 飄然思不群]”라고 하면서, 이백 시의 “청신함은 유신(庾信)과 같고, 준일함은 포조와 같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라고 한 바 있다. 두보가 말한 준일함은 주로 사회시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풍이다. 자연시의 주된 특색은 “경물의 형상을 잘 묘사하는[形狀寫物]”(鍾嶸 『詩品』) 것이다.

 

칠언시의 창작, 잡목을 뽑아 평탄한 길을 개척하다

포조 시의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의의는 칠언시에 있다. 포조는 칠언시가 아직 ‘시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기 전에,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압운과 구식 면에서도 진일보 발전시켰다. 특히 「‘갈 길은 험난하고’를 본떠[擬行路難]」 18수를 위시한 가행체(歌行體)는 내용 면에서도 충실하여, 성당의 이백, 두보, 잠삼(岑參, 715?~770)과 중당의 백거이(白居易, 772~846) 등의 선구가 되었다. 그래서 청대 초기의 왕부지는, 포조 칠언시의 초창(草創)의 의의를 “갈참나무와 백유나무 같은 관목을 처음으로 뽑아서 막 평탄한 큰길을 개척한[柞棫初拔, 卽開夷庚]” 것으로 비유하고 “칠언시는 포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면, 모두 돌피와 피 같은 잡초일 뿐”이라고 하였다.

 

산문의 경물 묘사의 정밀함, 이사훈(李思訓)의 산수화를 앞선다

포조는 시인이면서 산문가여서 적잖은 산문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 당시 성행한 변체(騈體)로 되어 있다. 그중에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도 더러 있다. 예를 들면, 「황폐한 성 부[蕪城賦]」는 광릉성(廣陵城)의 황폐한 경물 묘사에 “호매하고 황량한 기운이 넘쳐 마음을 놀래고 혼백을 감동케 하여” “부가(賦家)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姚鼐 『古文辭類纂』)라는 평가를 받았고, 「대뢰안에 올라서 누이에게 부친 편지[登大雷岸與妹書]」는 비유 과장 대우의 기교를 동원하여 여산(廬山)의 산수를 형상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검푸른 산자락과 산허리를 감싼 푸른 구름, 붉은 저녁놀을 받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봉우리,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놀이 색동의 층을 이룬 가운데, 골짜기에서 봉우리로 종으로 이어지는 희뿌연 안개가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룬다. 이어지는 골짜기 물에 대한 묘사에서는, 과장을 통해 냇물의 갖가지 자태를 동적으로 형상화하여, 정적인 산의 묘사와 묘한 대조를 이루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청대의 허련은 이에 대해 “이사훈(李思訓)이 몇 달을 그려도 그림으로 그려내기가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포참군집주』는 시와 부의 번역은 가능한 한 음수율과 운각(韻脚)을 고려하여 정형의 글이라는 원작의 특성을 살리고 낭송에도 편하도록 주의하였다. 저본의 주석은 전거(典據)는 서명만 제시하고 인용문에도 오류가 적지 않은데, 번역에서는 전거의 편명까지도 상세히 밝히고 내용상의 오류를 수정 보완하여, 전고의 원의(原義)뿐만 아니라 포조 시문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도록 하였다. 포조 시문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연구자에게도 적잖은 참고가 될 것이다.

역자 서문

머리말[前言]

책머리

전진륜서[錢序]

황절서[黃序]

우염서(虞炎序)

장부제사(張溥題辭)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첨부:송본 『포씨집』 목차[宋本鮑氏集目錄]

포참군집 

권5

시(詩)

복주산의 연회에 시종하여(1)[侍宴覆舟山(1)]

복주산의 연회에 시종하여(2)[侍宴覆舟山(2)]

배릉에 시종하여 경현산에 올라서[從拜陵登京峴]

산산에서 시흥왕의 명으로 짓다[蒜山被始興王命作]

여산에 올라[登廬山]

여산에 올라 석문을 바라보며[登廬山望石門]

향로봉을 시종하여 오르며[從登香爐峯]

유 중랑을 따라 원산의 석실에 놀러 가서[從庾中郎遊園山石室]

번거현에 올라[登翻車峴]

황학기에 올라[登黃鶴磯]

운양의 구리보에 올라[登雲陽九里埭]

여산에서 동쪽으로 진택을 바라보며[自廬山東望震澤]

삼짇날 남원을 유람하며[三日遊南苑]

벗 마자교에게(1)[贈故人馬子喬(1)]

벗 마자교에게(2)[贈故人馬子喬(2)]

벗 마자교에게(3)[贈故人馬子喬(3)]

벗 마자교에게(4)[贈故人馬子喬(4)]

벗 마자교에게(5)[贈故人馬子喬(5)]

벗 마자교에게(6)[贈故人馬子喬(6)]

손님에게 답함[答客]

왕 비서승의 시에 화답하여[和王丞]

황혼 녘 강을 바라보며-순 좌승에게[日落望江贈荀丞]

가을날-혜휴 스님에게[秋日示休上人]

혜휴 스님에게 답함[答休上人]

오흥 황포정에서 유 중랑을 송별하며[吳興黃浦亭庾中郎別]

오 시랑과 이별하며[與伍侍郞別]

선성 태수 왕승달(王僧達)을 송별하며[送別王宣城]

종제 포도수를 송별하며[送從弟道秀別]

부 도조와의 이별에 부쳐[贈傅都曹別]

부 대농의 「동료와 이별하며」에 화답하여[和傅大農與僚故別]

성 시랑을 전송하며 후정에서 전별연을 베풀어[送盛侍郞餞候亭]

순 중서와 이별하며[與荀中書別]

시종하여 옛 궁궐에 들러서[從過舊宮]

임해왕을 시종하고 형주로 가려고 막 신저를 출발하며[從臨海王上荊初發新渚]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1)[還都道中(1)]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2)[還都道中(2)]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3)[還都道中(3)]

심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上潯陽還都道中]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삼산에 이르러 석두성을 바라보며[還都至三山望石頭城]

환도의 송시[還都口號]

경구로 가는 길에 죽리에 이르러[行京口至竹里]

후저를 출발하며[發後渚]

양기에서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岐陽守風]

장송을 출발하면서 눈을 만나[發長松遇雪]

역사를 읊다[詠史]

촉의 네 현인을 읊다[蜀四賢詠]


저자

유송(劉宋)의 시인 포조(鮑照, 414~466)


역자

송영정 宋永程, Song Youngjong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아주어과에서 중국어 교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후, 계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재직 중 대만 대북의 대만국립사범대학 국문연구소와 중국 상해의 부단대학 중문과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주요 연구 논저로는 박사학위 논문인 「포조 시 연구」 외에 다수 논문을 발표했고, 『음갱(陰鏗) 시』(계명대학교 출판부), 『포조시선(鮑照詩選)』(문이재), 『하손(何遜) 시 역주』(중문), 『중국어문학의 이해』(공저, 신아사)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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